Roman Noir (6)

소설 2012.04.28 01:10

위원회 개정안이 통과 되고 나서 겨우 18시간 지났다. 잠은 총 42분 잤다. 탱크로 막힌 포위망을 뚫고 나서 20분 쯤 잤는데, 그 사이 다른 추격이 붙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 추격을 한 번 더 따돌리고, 편의점에서 빵과 밥 등 먹을 것을 돈 있는 대로 사와서 먹을 수 있을 만큼 먹었다. 영양의 균형과 재정적 상황을 잘 판단하여 산 음식들이었기 때문에 그 어떤 식사보다 효율적이었지만, 이제 남은 돈이 없었다.

 

양재훈에게는 잠이 더 필요 했다. 말이 충돌이고 활공이지, 자동차 안에서 자꾸 그런 충격을 받으면 허리는 물론이고 몸 전체 근육 및 뼈에 큰 무리가 간다. 물론 단련된 양재훈의 몸이었지만, 잠을 안자고 긴 투쟁을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추격은 계속 붙어 왔다. 양재훈은 그 누구보다 은신할 곳을 잘 찾아내는 인물이었지만, 추격은 그칠 줄을 몰랐다. 저녁 같은 대형 추격은 없었지만 정찰에 가까운 추격이 계속해서 붙어 왔던 것이다. 그래서 그 새 M9으로 세 명의 요원을 죽여야 했다. 서울을 크게 벗어날 수는 없어, 서울에 들어 왔다 나갔다를 반복해야 했다. 현재는 서울 외곽. 시간은 새벽 두 시가 조금 넘었다. 양재훈은 외진 도로 가에서 다시 한 번 잠을 청했다. 창문은 열어 놓았다. 조그마한 낌새라도 있으면 양재훈은 바로 깰 것이다.

 

그 때, 저 멀리서 두 명의 청년이 달려오고 있었다.

 

“야, 야. 그만 뛰어! 그만!”

 

밋밋한 노랑 티셔츠를 입은 청년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멈췄다. 그러자 가방을 들고 모자를 쓴 다른 청년 역시 멈추며 말했다.

 

“그래, 그만 뛰자. 후우...”

 

그러자 먼저 멈춘 청년이 다가와서 다른 녀석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이게 뭐야. 이 병신아. 그러게 좀 당황하지 말랬잖아!!”

 

“당황한 거 아니야 새꺄!”

 

그렇게 역정을 내며 정강이를 쓰다듬은 청년의 소매에는 피가 묻어 있다. 단 돈 9만 4천원을 위해, 택시 강도를 하고 결국 사람을 죽인 자의 소매였다. 워낙 정강이를 세게 걷어 차여 연신 정강이를 쓰다듬던 청년은 저 멀리에 불이 꺼진 택시를 발견했다.

 

“저거 택시 아냐?”

 

그러자, 다른 한 녀석은 다음에 나올 말이 듣기 싫어 먼저 선수를 쳤다.

 

“제발 오늘은 그만 하자.”

 

“안 돼. 저 새끼 아마 자고 있을 거야. 이번 일은 쉬워.”

 

이미 그의 손은 더럽혀 졌고, 더 이상 고민할 필요는 없다. 겨우 10만원도 안 되는 돈을 위해 사람까지 죽인 그다. 그는 조심스럽게 만신창이 택시의 뒤로 다가서기 시작했다. 인기척은 없다. 예감이 좋다.

 

“...”

 

다른 녀석도 결국 그 뒤를 살살 따라가기 시작했다. 어쨌건 돈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고, 택시 강도를 시작하자 한 것도 자신이었다. 그리고 친구의 말대로, 창문 열어 놓고 잠자는 택시기사를 터는 것보다 쉬운 일은 드물다. 게다가 이곳은 서울의 외곽. 차의 통행도 없고, 지나가는 사람도 없고, 저 멀리 불빛이 보일 뿐 일단 주위는 온통 숲이다.

 

앞서 가던 녀석은 조금씩 칼을 꺼내기 시작했다. 피를 제대로 닦지 않아 아직도 핏기가 서린 짧지 않은 나이프. 칼 앞에 인간은 나약하다. 그 것이 피 묻은 칼이라면 더욱 더 하겠지. 슬슬 뒤 창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앞좌석은 반쯤 젖혀져 기사가 자고 있음을 더욱 확신 시켜 주고 있었다. 상대를 깨우지 않을 생각은 없다. 일단 칼을 들이대는 게 우선이다. 녀석은 앞문 고리를 잡고 살짝 열었다. ‘딸깍’하는 소리가 작게 났지만, 안에서는 기척이 없다. 이제 칼을 들이대고 기사를 깨우면 그만이다.

 

조수석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역시 상대 기사는 자신 쪽을 보며 옆으로 누워 오른팔이 눌린 채로 자고 있었다. 녀석은 칼을 살살 들이대기 시작했다. 목표는 목. 목에 칼을 대고 그 다음에 뺨을 쳐 깨우면 아마 기사는 기겁을 하며 있는 것 없는 것을 다 내놓을 것이다. 조수석 위에 올라 왼손으로 칼을 들이대기 시작했다. 아무런 반응이 없다. 녀석은 칼을 대는데 성공했다. 남은 것은 뺨을 쳐 깨우는 것뿐. 실행은 바로 되었다.

 

“이 새꺄! 일어나!!!”

 

세게 휘두르는 손은 눈앞의 무언가 때문에 곧바로 멈추었다. 양재훈은 어느새 눈을 떠 상대를 응시하고 있었다. 아니, 잠은 진작 깬 뒤였다. 가렸던 오른 손은 어느새 살짝 보이며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 것은 총구의 끝에서 나오는 빛이었다. 양재훈은 그저 상대를 어떻게 사격하더라도 죽일 수 있는 위치에 놓길 바랐을 뿐이었다.

 

“이런 씨..”

 

‘슉’

 

상대가 욕지거리를 다 내뱉기도 전에, 양재훈의 총은 사정없이 그 자식의 오른쪽 눈 윗부분을 관통했다. 소음기를 장착해 놓았기 때문에 큰 소리는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소리는 결코 작지 않았다. 뒤따라오던 녀석은 그 소리에 발을 멈췄다. 친구의 말은 너무 부자연스럽게 끊겼고, 이상한 소리는 누가 들어도 명백히 총 소리에 가까웠다.

 

“뭐... 뭐야.”

 

작게 중얼거리며 고민하는 그에게 양재훈은 시체를 발로 차 택시 밖으로 내던져 보여주며 판단을 요구했다.

 

‘털썩.’

 

가방과 모자가 떨어지며 힘없이 시체가 나뒹굴어 졌다. 그와 함께 그 광경을 본 남자는 순식간에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한낱 택시 기사가 이런 공포를 만들어 내다니. 그 다음 순간, 비명이 나왔다.

 

“끄아아아악!!!!”

 

그리고 질주 했다. 뒤로, 무작정 온 길로 질주 했다. 상대는 총이 있다. 자신은 아무 것도 없다. 뇌에서 내린 명령은 그저 뛰라는 것. 양재훈은 룸미러로 그가 뛰어가는 모습을 보고 운전석 문을 열며 천천히 나왔다. 트렁크는 이미 열어 놓았다. 양재훈은 날렵하게, 그 한 편으로 침착하게 트렁크 안의 검은 가방을 꺼냈다. M21이 보였다. 아직 한 번도 써보지 못한 총. 한 번 쯤은 연습이 필요하다. 다행히 타겟은 멍청하게 숲 속으로 뛸 생각은 못하고 있다. 아마 이성이 마비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M21은 무겁다. 양재훈은 꿇어 앉아 M21을 허벅지와 양손으로 받쳤다. 8배율의 스코프의 수많은 선과 숫자 사이로 본 타겟은 대단히 컸다. 타겟과의 거리는 이제 막 겨우 100m 가까운 상황. 이 정도 거리면 머리통을 맞추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다. 바람도 잔잔하다.

 

‘텅!!’

 

‘탕’과는 다른 육중한 소리가 도로를 메우며, 타겟은 그대로 길바닥에 널브러져 쓰러졌다.

 

 

 

 

Roman Noir <6> 저격

 

위원회가 어떻게 장막 뒤에서 권력을 유지하는가하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한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그들은 초대 대통령과의 정쟁에서 승리하고, 그의 결함을 대거 확보했다. 그리고 내각을 결함 있는 사람들로 가득 채웠다. 물론 결함 없는 사람은 없었으나, 권력을 위해 위원회와 결탁할 만한 인물을 뽑은 것이다. 군 인사도 마찬 가지였다. 대부분 그들은 치명적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 연유로, 위원회는 다섯 명의 외부 위원을 아주 손쉽게 얻을 수 있었다.

 

위원회의 권력은 곧 정보다. 양재훈이 도로지리위원이라는 것은, 그가 대한민국의 모든 도로지리정보를 꿰차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마찬가지로 55명 각 위원들은 자신만의 정보를 가지고 있다. 정보가 위원회에 모두 있으니, 자연히 정부는 위원회 밑이 된다. 물론 이러한 방법은 현대에 와서 흔들리고 있지만, 아직은 유효하고 있었다. 그 일례로 양재훈의 손에 들려진 두꺼운 서류철은 양재훈이 아직도 대단한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었다.

 

“...”

 

한 낮이 되고, 양재훈은 그 동안 청년 강도들로 부터 얻은 돈으로 다시 많은 식량을 구매해서 비축해 놓을 수 있었다. 물론 그 중의 반은 이미 먹어 버렸다. 잠은 여전히 10분씩만 잤다. 그래도 12시가 가까워지니 도합 3시간쯤은 잔셈이 되었다. 피곤이 다 풀렸을 리는 없으나, 어느 정도 피곤이 해소된 것에는 틀림없었다.

 

양재훈의 눈앞에는 서울 외곽의 한 호젓한 카페가 있었다. 평일이고, 한 낮인데도 유럽풍 카페의 문에는 필기체의 'CLOSED'가 걸려 있었다. 장사가 안 되는 것도 아니고, 주인이 오늘 휴가를 간 것도 아니다. 그 카페는 오늘 특별한 손님을 받기 위해 문을 닫은 것이다. 그 증거로 카페 정문 앞에는 두 남자가 어색한 사복 차림으로 어색하게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후...”

 

양재훈은 심호흡을 한 뒤 자신의 택시에 M9, 수류탄 등 모든 무기들을 내려놓고 차에서 내렸다. 잘못하면 이 자리에서 죽는다. 하지만 죽을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양재훈이 확인 했던 전영민의 눈빛은 신뢰를 주어도 될 만 한 눈빛이었다. 도로를 건너, 뚜벅뚜벅 걷기 시작했다. 양재훈이 성큼성큼 다가가자 카페 문 앞에서 어색하게 이야기 하던 두 남자는 곧바로 맹수의 눈매로 돌변했다. 아직 20m나 남았는데, 결국 그 중 한 사람이 천천히 다가 와 양재훈에게 말을 걸었다.

 

“아, 아저씨. 여기 카페 들어가시게요? 오늘 문 닫았는데.”

 

남자는 대단히 어색하게 평범한 어투를 구사했지만, 그의 눈빛은 이미 양재훈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게다가 그의 육중한 팔은 다소 거칠게 양재훈의 어깨를 잡아 제치고 있었다. 그러자 양재훈은 팔을 들어 자신의 어깨에 올려 진 남자의 팔에 살며시 손을 대고 말했다.

 

“전영민 대통령을 만나러 왔다.”

 

그 말이 다 떨어지기도 전에, 남자는 순식간에 유도 기술을 써 양재훈을 제압해 바닥에 눕혔다. 어느새 양재훈의 팔은 봉해진 상태. 그리고 때맞춰 같이 보초를 서던 경호원이 다가와 양재훈의 손에 재빨리 수갑을 채웠다. 양재훈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잘 이루어지도록 반항 없이 가만히 있었다. 곧 두 남자가 양재훈을 일으키고, 양재훈을 재빨리 시야에서 가리며 말했다.

 

“네 정체가 뭐냐. 여기에 대통령께서 계신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극히 소수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텐데.”

 

“그냥 대통령 앞에 날 데려 가.”

 

“그럴 수는 없지.”

 

경호원은 그렇게 말하며 양재훈의 몸을 거칠게 수색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아무 것도 없었다. 하지만 만일이라는 것이 있다. 양재훈이 몸 안에 시한폭탄을 삼키고 그 것이 대통령 앞에 갔을 때 터질 수도 있는 것이다. 경호원은 일단 안의 경호 실장에게 괴한의 침입을 알리기 위해 들어갔다. 동시에 다른 경호원은 다시 양재훈을 심문했다.

 

“신분을 밝혀라.”

 

그러자 양재훈은 답했다.

 

“양재훈이라고 말하면 아실 것이다.”

 

그 말에 경호원은 2초 정도 당황하더니 순식간에 권총을 뽑아 양재훈의 머리에 겨누었다. 양재훈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권총을 노려보았다.

 

“이 미친 간첩새끼가.”

 

경호원은 거칠게 말하며 양재훈의 이마에 더더욱 권총을 디밀었다.

 

“무슨 수작이야. 이 새꺄.”

 

양재훈은 그 말에 그저 아무런 동요 없이 말했다.

 

“대통령께 가서 양재훈이 왔다고 해. 이름 말한다고 대통령이 죽기라도 하나?”

 

“대통령은 바쁘시다. 네 따위 놈과 장난 칠 시간 없어.”

 

경호원은 완고하게 말했다. 하지만 양재훈은 물러서지 않았다.

 

“나야 말로 바쁘다. 어서 전해.”

 

그렇게 말하며 양재훈은 툭 쏘았다.

 

“죽고 싶지 않으면.”

 

아무런 무기도 없고 수갑까지 채워진 남자로 부터 나온 말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경호원은 숨조차 쉴 수 없었다. 자신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도저히 상대를 이길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저절로 손이 가슴 춤에 있는 마이크로 갔다. 버튼을 눌렀다.

 

“저.. 저기. 실장님.”

 

그러자 이미 보고를 받고 살짝 짜증이 난 경호 실장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무슨 일이야?”

 

“그게... 양재훈이라는 자가 대통령을 뵙고 싶다 합니다.”

 

그 말에 경호 실장은 더욱 더 짜증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뭐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그 새끼 뭐하는 새끼야?”

 

“그게...”

 

당황하는 경호원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자, 양재훈이 수갑을 찬 채 마이크에 다가가 말했다.

 

“김 실장. 대통령에게 가서 양 위원이 왔다고 해. 오십오 명 중에 양 위원은 나뿐이니까.”

 

“뭐라고?”

 

아직 갈피를 못 잡은 경호 실장에게 양재훈은 마지막 일침을 날렸다.

 

“어제 대통령이 왜 자리를 비웠지?”

 

그 말을 끝으로, 무전기에서는 더 이상 신호가 오가지 않았다. 경호 실장은 한참 동안 작은 마이크를 잡고 있다가 그 것을 놓아 버렸다. 경호 실장이 아는 것은 별로 없었다. 단지 이해할 수 없는 강압으로 대통령을 혼자서 이상한 곳으로 모셔야 했고, 이틀 후 청와대로 돌아 온 전영민 대통령의 입에서 맨 처음 나온 말이 ‘망할 위원 놈들’ 이었다는 것뿐이다. 경호 실장은 눈을 비볐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권한 밖의 일임에는 틀림없었다.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 지시에 따르는 것뿐이다. 경호 실장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카페 저 구석에는 전영민과 그 나이 또래로 보이는 여성이 손을 잡고 즐겁게 무언가를 이야기 하고 있었다. 절대 이 시간을 방해하지 말라고 대통령은 누차 말했지만, 경호 실장은 어쩔 수 없이 그 둘 사이를 어색하게 방해해야 했다.

 

“저기... 각하...”

 

나이 먹은 경호 실장은 어색하게 예전 호칭을 쓰며 대통령을 불렀다. 그러자 전영민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경호 실장을 쳐다보았다. 전영민 앞의 여성 역시 인상이 구겨진 것은 마찬 가지였다.

 

“누가 뵈러 찾아 왔습니다.”

 

“누구요?”

 

전영민의 대답은 곧바로 튀어 나왔다. 천금 같은 시간을 방해 받은 것이 너무나 짜증났던 것이다. 그런 대통령의 반응에 실장은 송구스러움을 온 얼굴로 표현하며 입을 떼었다.

 

“양... 위원이라 합니다.”

 

그 이름을 듣자, 전영민은 조금 더 인상을 쓰더니 곧 인상을 폈다. 양 위원이 양재훈을 가리키는 것임을 전영민은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양재훈이 현재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는 지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전영민은 잠시 고개를 숙이며 생각 했다. 그러자 마주 앉은 여성이 책상 위에 놓인 전영민의 손을 포개 왔다. 전영민은 고개를 들었다. 눈앞의 여인은 이 시간을 방해받기 싫다며 그 맑은 눈동자로 애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영민은 선택해야 했다.

 

“미안해.”

 

전영민은 포개진 손을 다시 살짝 잡으며 말했다.

 

“잠시, 십 분 정도만 자리를 비워야 할 것 같아.”

 

그러자 여인은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손을 살짝 빼내었다.

 

“미안.”

 

그 말과 함께 전영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고개를 까딱여 경호 실장에게 양재훈을 데려 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실장은 선뜻 움직이지 못하며 말했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이 자는 간첩으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괜찮소. 데려 오시오.”

 

그렇게 말하며 전영민은 카페의 다른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여인은 딱 한 시간 전에 전영민을 기다리던 그 자세로 우아함을 뽐내며 잡지를 읽기 시작했다. 그녀의 앞에 놓인 커피는 이제는 빈잔 이었지만, 여전히 그녀의 우아함을 빛내 주고 있었다. 전영민이 그 모습에 다시 도취 되어 한참 감상하는 동안 몇 사람의 발자국의 소리가 들리며 곧 양재훈이 나타났다. 여전히 그는 수갑이 채워진 채였다. 전영민은 양재훈의 행색을 보고 깜짝 놀라 일어나며 경호원들에게 소리쳤다.

 

“빨리 이 수갑을 풀어 드리지 못해?”

 

대통령의 호통에 경호원들은 달려 와 허겁지겁 양재훈의 수갑을 풀었다. 곧 양재훈이 자유가 되자, 전영민은 그에게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반갑습니다. 양 위원.”

 

양재훈 역시 전영민의 악수를 받으며 말했다.

 

“반갑습니다. 대통령님.”

 

“아직 살아계셨군요. 역시 양 위원답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전영민은 양재훈에게 자신의 앞자리를 권했다. 양재훈이 목례로 답하며 자리에 앉자, 전영민 본인도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사뿐히 앉았다.

 

“정말 위원들의 정보력은 무시할 게 못되는 군요. 양 위원께서 제가 이 카페에 올 거라는 것을 알 정도라니. 이 장소를 선정한 것도 불과 오늘 아침인데, 제명되신 양 위원께서 이런 정보를 받았을 리가…”

 

“위원들의 정보는 상당히 방대 합니다.”

 

양재훈은 전영민의 말을 자연스럽게 받으며 대답했다.

 

“저기 계신 저 여인이 전영민 대통령의 어렸을 적 첫사랑이라는 게 주요점입니다.”

 

양재훈은 예의바르게 말하고 있었지만, 전영민의 얼굴은 벌게져 오기 시작했다. 양재훈의 말은 이어졌다.

 

“실제로 전영민 대통령은 지금까지의 여타 대통령과 달리 약점이 거의 전무했기 때문에, 이러한 외도가 거의 유일한 약점이 되었고 위원회는 이에 대한 엄청나게 방대한 자료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 역시 지리위원으로서 이러한 장소에 대한 정보를 꽤나 가지고 있지요. 이 카페는 대통령께서 대학 시절 잠깐 사귀었던 여자친구와 와 본 카페로, 그 때 대통령이 ‘이 카페는 나이 먹어서 와도 좋을 것 같아. 오랜만에 보는 사람 만나는 장소로도 좋은 것 같고.’라고 말했던 것 까지 보고서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 때문에 여기는 대통령이 올 확률이 높은 곳으로 기재 되어 있고, 이에 저는 오늘 아침 보고를 받지는 못했지만, 여기를 주요 후보 중 하나로 보았던 것입니다.”

 

“음... 그렇다는 건, 저의 옛 여자친구를 심문했다는 건가요.”

 

전영민은 애써 당황한 기색을 감추며 물었다.

 

“아닙니다. 그 분이 그렇게 기억력이 좋을 리는 없겠지요. 오래 사귄 것도 아니고 어떻게 대화 하나 하나를 기억해 낼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약 30년 전, 위원회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하나 마련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후보자감시프로그램’입니다. 후보자란, 향후 정계의 높은 자리에 진출할 가능성이 큰 인물들을 말합니다. 당연히 S대 학생회장이었던 전대통령은 랭크가 높은 후보자였습니다. 그래서 이미 그 시기부터 전 대통령은 감시를 받은 겁니다. 실제로 이 프로그램의 적중률은 70%에 달합니다. 게다가 그 중 전대통령같이 20대 부터 감시를 받은 자도 20%나 됩니다. 물론 전대통령께서 위원회의 힘을 받아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이와 같은 배경이 한 몫 했지요. 20대 부터 감시 받은 대선후보는 전대통령이 유일 했으니까요.”

 

“역시… 그랬군요.”

 

전영민은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고 양 손을 비볐다. 그러기를 일 분 쯤, 전영민은 다시 짧은 숨소리를 낸 후 말했다.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양 위원. 아직 위원회는 와해되지 않았고, 제가 여차하면 양 위원을 잡아다가 전 의장 앞에 바칠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아실 텐데 굳이 여기 오신 이유가 뭡니까.”

 

그 말에 양재훈은 전영민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말했다.

 

“대통령께서는 저의 편이라고 말씀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랬다. 전영민은 분명 그렇게 말했었다. 그리고 전영민 본인 또한 그 말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사실 양재훈이 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자신이 한 그 말을 상기하고 있었다.

 

“아.”

 

전영민은 의도적으로 짧은 탄성을 낸 뒤 웃었다.

 

“하하하하하. 역시 양 위원은 다르군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시다니. 하하하하.”

 

전영민은 그렇게 대차게 웃고는 말했다.

 

“그 말, 저를 믿는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양재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전영민은 그렇게 말한 후, 상체를 숙여 양재훈에게 더욱 가까이 간 뒤 나지막이 말했다.

 

“하지만 양 위원. 양 위원께서 알다시피, 아직 전 의장과 위원회의 권력은 막강합니다. 아직 대부분의 실권이 그들에게 있고 정보량 또한 엄청납니다. 아무리 제가 총장들을 설득하고, 자립을 꾀하려 해도 지금은 힘든 상황이라는 걸 잘 아실 겁니다.”

 

“저도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그저 저의 적이 전 의장과 그의 위원들이 아닌 전 대한민국이 될까봐 두려울 뿐입니다. 위원회의 군에 대한 협력 요청은 거부할 수 없겠지요. 하지만 전군이 저를 필사적으로 쫓을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물론입니다.”

 

전영민은 그렇게 말한 후, 상체를 다시 일으켜 의자에 기댔다. 어찌 보면 상대는 권력 싸움에서 밀려난 일개 위원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는 양재훈이다. 전영민도 양재훈의 전설은 어느 정도 들어 알고 있었다. 그가 믿음직한 것은 사실이지만, 전영민 대통령은 위원회와 아직 등을 돌리고 전면적으로 싸울 수는 없었다. 전우석 의장을 상대하려면 조금 더 치밀한 준비가 필요했다.

 

“양 위원님.”

 

전영민은 한 참의 숙고 뒤에야 입을 열며 말했다.

 

“역시 도움은 드리지 못합니다.”

 

양재훈은 그 말에 시선을 살짝 아래로 깔았다. 그 때, 전영민의 남은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양 위원을 방해하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전영민은 미소를 지었다. 그랬다. 그게 정확히 양재훈이 원하던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양재훈은 심각했던 표정을 풀고 전영민에게 감사의 표시를 했다. 아직 미소 지을 수는 없었다. 평소의 양재훈이었다면 지금쯤 활짝 웃고 있었을 것이다. 전영민 역시 양재훈의 그러한 심리상태를 잘 이해하고, 양재훈의 그 감사인사를 최고의 사의로서 받아 들였다. 이제 이야기는 끝났다. 전군과 정부는 양재훈 추적에 열을 올리지는 않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만약 양재훈이 위원회 청산에 성공한다면, 전영민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진정한 대통령이 될 수 있다. 어쩌면 전영민이 양재훈에게 부탁해도 모자랐을 상황인 것이다. 그럼에도 전영민은 일어서서 떠나려는 양재훈에게 한 마디를 더 해야 했다.

 

“양 위원, 한 가지만 더.”

 

양재훈은 그 말에 뒤돌아서서 가려던 발을 멈추었다.

 

“저도 개인적으로 정보를 좀 모아 봤는데, 알아낸 것은 이 것 하나뿐입니다. 저의 살생권이 ‘이정현’이라는 위원에게 있다는 것.”

 

전영민은 그렇게 말하며 주머니에서 뭔가를 하나 꺼내었다. 그것은 겉이 완전히 싸인 도청기였다.

 

“어제 위원회를 갔다 온 뒤로 일단 도청기를 모두 제거해버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아, 변명 거리는 있습니다. ‘위원회가 어수선 해서 정보가 악용될 소지가 있기 때문에 잠시 제거했다. 확실히 정리 되면 다시 달겠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다행히 양 위원과 저의 대화는 안전합니다. 다만, 양 위원이 여길 왔다 간 사실 정도는 알려질 수 있습니다. 저야 변명거리가 많고, 저쪽도 복잡한 상황이니 대통령인 저를 이 정도 이유로는 제거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저의 입지가 불안해지기 시작하면, 다시 양 위원을 방해할 수밖에 없게 될지도 모릅니다.”

 

거기까지만 들어도 의도는 파악할 수 있었다. 양재훈은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여 전영민에게 인사하며 말했다.

 

“이정현 위원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양재훈은 그렇게 말하고는 그 자리를 나왔다. 전영민도 더 이상 잡지 않았고, 그의 경호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양재훈은 빠른 걸음으로 카페를 나와 자신의 낡은 택시에 올랐다. 그리고 빠르게 서류를 뒤지기 시작했다. 목표는 ‘6번 이정현 위원’. 전영민에게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 제거하고 싶은 인물이다. 그리고 전영민의 말대로 곧 양재훈과 전영민의 밀회 사실이 이정현에게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시간차가 존재한다. 왜냐하면 이정현이 이십사 시간 내내 정보를 열람하고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른다. 중요한 것은 이정현이 이 정보를 열람하고 전우석에게 정보를 건네주기 전에 이정현을 죽여 버린 다면, 양재훈과 전영민의 만남을 전우석이 알 길은 없어진다. 그게 바로 위원회의 시스템이었다. 결국 각 정보는 각 위원들이 최고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6. 이정현 위원 - 대영자동차그룹 전무’

 

이정현 위원 역시 원로 위원에 속한다. 대부분 회사 쪽에 취직을 하는 위원들은 나이가 먹을수록 꽤나 직급이 높아지는데, 일단 첫째로 위원에 선정될 정도의 인물이면 그 능력 역시 대단히 좋기 때문이며, 둘째로 부당하게 자신이 승진이 안 되는 일이 벌어지면 바로 자신의 회사에 감사를 투입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향년 58세의 이정현 위원이 전무인 것은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는 충분히 사장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으며, 심지어 얼마 전에 작고한 회장의 후계자도 마음만 먹으면 될 수 있었다. 실제로 이정현은 그러한 야심을 가지고 전 의장 및 위원회에 대영그룹의 가족 세습적 운영에 대한 강한 압박을 요구했지만 실패한 바가 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이제 위원회 권력을 독점하게 된 의장파 위원으로서 이정현은 대영그룹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시작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이정현 위원이 지난 몇 년간 그 순간만을 고대해 왔고, 그의 성격이 급하다는 것을 고려해 봐도 그 실행이 오늘이 될 확률은 아주 높다. 양재훈은 그러한 가정 속에 차를 다시 몰기 시작했다.

 

대영그룹 본사는 다른 곳과는 약간 동떨어져 있었다. 서울 외곽에 있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회사들이 모여 있는 주요 거리에 있지는 않았다. 그것은 대영그룹이 오래 된 그룹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대영그룹은 꽤나 불안한 조짐을 보이고 있었는데, 그것은 부사장까지 모두 친족으로 구성된 노골적인 세습구도와 얼마 전에 대를 이은 2대 회장의 경영 능력이 한참 부족하다는 데에 있었다. 회사 주요 간부로서, 또한 위원으로서 이정현 위원은 대영그룹에 대한 방대한 양의 정보를 가지고 있을 것이고 이를 이용하여 약점을 잡아 그룹을 삼켜버릴 것이다.

 

양재훈의 예상대로, 이정현은 오후 두 시가 되자 경호원 넷과 자신의 새 ‘내각’이 될 세 명의 간부를 대동하여 회장실을 찾았다. 갓 마흔을 넘긴 새 회장과 그의 삼촌 사장들은 상당히 경직된 표정으로 회장실에 둘러 앉아 있었다. 그들은 아직 이정현의 진정한 정체는 몰랐다. 다만, 그가 하루 밤 사이에 상당히 고압적인 자세로 전화를 걸어 왔고, 또한 대동한 경호가 내뿜는 위압감이 대통령 경호에 못지않았다는 사실이 방심할 수 없게 만들었다. 상황 파악은 안 되었지만, 모두는 이러한 것에서 본능적인 위협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들이 가진 깊은 곳의 죄책감은 이런 위협을 더욱 극대화 시켜 주고 있었다.

 

“음, 다 모이신 것 같군요.”

 

이정현은 주위를 둘러보며 이렇게 말한 뒤 흡족한 웃음을 보였다.

 

“그럼, 이제 우리 회사의 구조조정에 대해서 논의해 보도록 합시다. 아, 물론 구조조정 대상은 부사장 이상 회사 주요 간부입니다만…”

 

이정현은 그렇게 말하며 서류를 하나 꺼내어 들춰 보더니 말했다.

 

“이것 참, 큰일이네요. 뭐 남길만한 사람이 몇 안 되네요.”

 

거기까지 진행 되자, 새 회장은 탁자를 세게 내려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말했다.

 

“이 전무! 지금 뭐하자는 거요! 당신이 뭔데 우리를 구조조정 해! 이 회사의 회장은 나야! 당장 당신을 잘라 버릴 수도 있다고!”

 

그 말에 시종일관 거만한 웃음을 잃지 않던 이정현은 안경을 벗더니 말했다.

 

“앉아. 좋은 말 할 때.”

 

“뭐... 뭐??”

 

회장이 놀란 나머지 그렇게 말하자 이정현의 경호원 한 명이 곧바로 권총을 꺼내어 회장의 머리를 겨누었다. 물론 권총이 보인 순간, 회의실 내에 짧은 탄성들이 나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중 탄성을 내지 못한 것은 타깃이 된 회장 본인뿐이었다.

 

“한 번만 더 반말 하면…”

 

경호원은 그렇게 말하며 총구로 회장의 머리를 디밀었다. 그러자 회장은 다리를 부들부들 떨며 자신의 자리에 다시 주저앉아야 했다.

 

대영 그룹 본사 10층 회장 회의실에서 이러한 촌극이 벌어지는 동안 양재훈은 이미 본사 앞에 도착하여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이미 설계도를 통해, 그리고 경비를 통해 이정현이 10층에 있을 것이라는 심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방법이었다. 양재훈이 10층에 난입하여 이정현을 죽일 수도 있지만, 이정현의 성격 상 경호원 넷 정도는 대동하고 있을 것이고 양재훈은 뜻하지 않은 부상을 당할 수도 있다. 자신의 타겟은 이정현만이 아니다. 이정현 한 명 잡는 데 총력을 기울일 필요는 없다.

 

다행히 M21이라는 좋은 총이 양재훈에게 있었지만, 주위에는 높은 건물 따윈 없었다. 주위는 평범한 상가와 주택가 뿐. 그 사이에서 대영그룹 본사 건물만이 어울리지 않게 쑥 솟아 있었다. 다만, 본사 정면 쪽으로 부터 언덕이 시작 되어 고도가 조금씩 높아지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었는데 대영그룹 10층 창문이 보이려면 꽤나 멀리가야 하는 것이 문제였다. 일단 고민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양재훈은 차를 몰아 언덕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한참을 올라와 5층짜리 원룸 건물의 옥상 문을 부숴 열고나서야 대영 그룹 본사 건물의 10층이 겨우 보였다. 망원경으로 보니, 다행히 회의실 외벽은 유리로 둘러싸여 내부가 훤하진 않지만 보이긴 하고 있었다. 이정현은 양재훈이 보는 각도에서는 창틀 사이로 살짝 얼굴만 내밀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상태였다. 모든 걸 떠나 일단 보였다는 것 자체로서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너무 멀리 왔다는 것. 망원경으로 거리를 대충 재니 950m가 나온다. 950m, 또는 1km가 얼마나 먼 거리인가! 서울시청에서 광화문까지가 1km요, 한강 너비가 넓어야 1km다.

 

지금 양재훈이 해야 하는 일은, 한강 한쪽 변에서 다른 쪽 변 유리창 뒤에 앉아 얼굴만 빼꼼히 내밀고 있는 남자의 머리통을 날리는 것이다. M21은 좋은 저격 소총이었지만, 유효사거리는 700m에 불과하다. 유효사거리라는 게 무엇인가. 700m 거리에서 상대의 ‘상반신’을 맞출 수 있는 거리이다. 게다가 오면서 느꼈지만 밖에는 바람도 꽤나 불고 있다.

 

일단 양재훈은 자세를 잡았다. 삼각대를 놓고 소총을 끼웠다. 스코프도 달았다. 스코프를 통해서 본 이정현은 아직 변동 없이 그 자세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야기가 언제까지 될는지는 모른다. 이정현이 이동하기 전에 빠르게 저격을 끝마쳐야 한다. 1km 저격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양재훈이 저격수였던 것도 아니고, 실제로 그는 이번이 저격 총을 잡는 게 불과 세 번째였다. 두 번째는 새벽의 저격이었고, 첫 번째는 군에서 심심풀이로 잡아본 것뿐이었다.

 

1km의 저격. 15배율 스코프에 그어진 수많은 선들이 말해 주듯, 이 정도 거리의 저격에는 엄청나게 많은 변수가 들어간다. 무엇보다 첫째로, 총 자체의 정확도가 받쳐주질 않는다. 700m 거리에서 바람 없이 정확한 저격이 이루어졌을 때야 겨우 성인 남자의 상반신 정도를 맞출 수 있다. 이 정도도 괜찮은 저격 소총이다. 그러나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이야기는 달라진다. 차라리 한 방향으로 일정한 바람이 분다면 그나마 경험적으로 오차 수정이 가능하다. 하지만 양재훈에게는 경험도 없었고, 1km 구간 내에서 바람이 한 방향으로 부리라는 보장도 없다. 게다가 놀랍게도, 1km쯤 되면 중력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바람이 없으면 탄환이 포물선을 그린다는 것이다. 심지어 저격 부대에서는 코리올리효과까지 저격수에게 가르치며 오차 개선을 요구한다. 그뿐인가. 표적은 현재 유리창 뒤에 있다. 만약 저 유리가 강화 유리라면, 유리창의 밀도에 따라 총알이 다른 곳으로 튀어 미묘하게 굴절될 수도 있다.

 

1km의 거리. 표적은 반지름 15cm 남짓한 구, 이정현의 머리통.

 

양재훈은 누워 자세를 잡고 스코프를 통해 이정현을 조준했다. 양재훈 역시 이 저격이 얼마나 도박적인 것인가를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잘 쏴도 못 죽이기 쉽고, 아무리 못 쏴도 총알은 회의실의 유리창을 관통하여 이정현을 비롯한 그 자리의 사람들을 전부 도망치게 할 것이다. 두 번은 없다. 너무나 많은 변수와 부족한 경험. 그가 이런 상황에서 믿을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직감’과 ‘운’ 뿐이다.

 

양재훈이 온 정신을 스코프에 집중하고, 몸으로 풍향과 풍속을 느끼며 기회를 보던 어느 순간. 갑자기 바람이 잔잔해져 오는 게 느껴졌다. ‘휭’소리까지 내며 불던 바람은 멎어 주위를 순식간에 고요하게 만들었다. 왠지 바람이 M21로 부터 이정현의 머리까지 길을 내준 듯, 양재훈은 ‘지금 바람은 없다’는 이유모를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방아쇠에 얹은 손가락에 힘을 주며 양재훈은 숨을 참았다. 몸의 떨림은 양재훈의 의지로 최소화 되었다. 그 다음 순간, 총신이 양재훈에게 말을 걸었다.

 

‘조금 더 왼쪽으로’

 

양재훈의 M21의 강선은 시계방향으로 깎여 먼 거리에선 총알이 우측으로 향하기 쉬웠다. 물론 양재훈은 그것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양재훈은 예사롭지 않은 직감으로 조준을 아주 살짝 수정했다. 스코프의 중심은 이정현의 머리가 아닌 그의 머리카락 살짝 왼쪽 위를 비추고 있었다.

 

그 순간, 양재훈은 방아쇠를 당겼다.

 

‘텅!!’

 

탄속 850m/s의 탄환은 발사 후 1초 동안이나 바람이 내 준 무풍지대를 활공하며 휘었다. 뱅글뱅글 도는 탄환은 중력과 원심력을 받아 오른쪽 아래로 꺾여 들어가 유리창을 이내 뚫었다.

 

‘쨍그랑!!’

 

그 소리는 회의실 내에 크게 울려 퍼졌지만, 이정현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발사 1.3초 후 양재훈은 반동을 멈춘 총신의 스코프 사이로 이정현의 머리에 자신이 쏜 탄환이 박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위원님!!!!”

 

“대체 어디서!!! 이 근방에 높은 건물은...”

 

경호원들은 난리를 펴며 동시에 총알이 날아온 곳을 쳐다보았다. 육안으로는 확인도 잘 되지 않는 저 멀리의 언덕 위 건물 어디선가에서 날아온 것일 터. 네 명의 경호원은 그 언덕을 한참 멍하니 쳐다보더니, 재빨리 통신을 돌리기 시작했다.

 

“SX! SX! 이정현 위원이 저격 피살 되었다. 속히 이 일대 10km 구간 모두 봉쇄 바란다!”

 

물론 그들이 봉쇄를 시작했을 때는, 이미 일을 마친 양재훈이 떠난 뒤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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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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