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이 가결되었다. 탄핵이라는 것은 헌법에 근거한 어디까지나 법적인 절차고, 박근혜와 여당을 비롯하여 국민들까지 모두가 이제 이 사태가 법정싸움으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박사모는 대통령이 뭘 얼마나 잘못했냐고 난리고, 촛불은 어디로 가야하는지, 포스트 탄핵 국면은 어떻게 되는지, 박근혜라는 타겟이 일단 정지하게 되자 혼란이 시작되는 국면이다.


내가 매우 강조하고 싶은 것은, 국민들이 대통령이 범법자라는 것에만 빡쳐서 이 지경이 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일단, 법은 판결을 내리는 데 있어 보수적이고 보수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고, 엄청난 의혹들이 있었는데 100% 검증은 어떻게든 불가능해질 테니 한 두 개라도 검증과정에서 엎어지면 괜히 또 어정쩡한 꼼수 쓰는 빌미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니까 국민들인 우리는 법적으로 무얼 잘못했는지를 자꾸 파고들기 보다는, 박근혜와 그 패당이 이 사회를 얼마나 제대로 망쳐놓았는지를 지속적으로 말해야 하고, 또 우리가 원하는 사회가 어떤 것인지를 지속적으로 주장해야 한다. 여기에는 보수와 진보가 없어야 하며, 현행 법으로 해결될 수 있는 이야기를 넘은 초법적인, 초헌법적인, 우리가 원하는 ‘가치’에 관한 이야기여야 한다. 그래야 다음 정권이 어떤 정권이 들어오든, 개헌을 하면 어떻게 되든지 간에 촛불을 들었던 국민들 대다수가 바라는 방향으로 될 것이다.


박근혜가 설령 만에 하나 단 하나의 법적 잘못을 하지 않았다고 해도, 퇴진해야 한다. 그 이유는 박근혜정부가 우리 사회를 다음 7가지 포인트에서 철저하게 망쳐놓았기 때문이다.


1. 우리는 깜깜이 정부를 원하지 않는다: 대통령과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해서 최소한 미국 수준으로는 언제라도 확인 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세월호 7시간을 비롯하여, 대통령 본인이 어디서 뭘 했고 평소에 대체 뭘 하고 있는지 죄다 관저라는 한 마디로 깜깜이로 만든 것부터 시작해서, 국정교과서, GSOMIA, 사드, 위안부 다 깜깜이로 처리했다. 국민들이 알면 골치만 아프고 일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자기들 마음대로 자기들이 원하는 국가를 만들어도 된다는 전형적인 반민주적 태도다.


2. 우리는 책임감있는 공무원들을 원한다: 어떻게 된 게 자기가 잘못했다고 하고 책임을 통감하고 자기 선에서 어떤 조치라도 취하는 사람이 없다. ‘이게 나라냐’고 하면 이 포인트가 제일 중요하다. 박근혜 한 명의 문제가 아니라, 이 나라 지도층 전체에 문제가 있는 부분이다. 김현웅 장관이 뒤늦게 물러났지만, 그래도 박수를 보내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보아라. 책임져라. 다 자기들은 잘 했다거나, 어쩔 수 없었다거나, 몰랐다고 한다. 그 면에서는 나치 독일이 따로 없다. 권력만 있고 책임은 없으니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조선시대에도 왕이나 정승들이 이런 식으로 책임회피 하지는 않았다.


3. 우리는 소통으로 검증되는 정치를 원한다: 무슨 얘기냐 하면, 기자회견 할 때 질의응답을 좀 하고, 출석요청 하면 출석하고, 국정조사에 나오면 성실하게 응답하고, 자주 대국민 기자회견 같은 것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응답 대충해서 기름장어처럼 이상한 소리로 빠져나가면 집요하게 물어야 하고, 날카롭게 질문하는 기자와 국회의원도 필요하다. 엉뚱한 대답해도 그냥 넘어가고 다음 질문 해버리고, 언론에 대충 응대하는 게 당연시 되고, 너무 간단하게 위증하고, 자기 발언에 책임을 안 지다 못해 박적박까지 나오는 지경이다. 무능한 사람을 또 위로 보내서 나라 전체가 또 고생하지 않으려면, 언론 검증을 확실하게 해야 하고, 뱉은 말에 책임을 좀 지게 해야 한다.


4. 우리는 절차를 지키는 대통령을 원한다: 이번 사태로 가장 뼈아프게 깨달은 것은, 대통령이 절차를 다 철저히 무시해도 별로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절차라는 것이 법적으로 규정되지 않고 상식과 관습으로 이어져 왔기 때문에, 상식도 없고 관습도 무시하는 사람이 나타나자 모든 게 무너져 버렸다. 절차 준수의 의무는 반드시 필요하다. 더불어, 기록물도 좀 제대로 남겼으면 한다. 우리는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각종 의궤들이라는 진짜 대단한 기록유산들을 가지고 있는데 그 후손이 이런 모습이어서는 곤란하다.


5. 우리는 공정한 사법질서를 원한다: 검찰이 훨씬 빨리 공정하게 일처리를 시작했다면, 이렇게 고통이 길어졌을까. 검찰이 등을 살짝 돌리자, 일이 정말 급속도로 풀리기 시작했다. 검찰이 그만큼 영향력이 크다. 검찰 개혁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역시 정치적 영향력에서 벗어나 삼권분립과 견제의 의미를 확실히 가질 필요가 있다.


6. 우리는 자유로운 언론을 원한다: 100만 촛불 같은 게 등장해야 겨우 보도 시작하는 방송 3사에는 반드시 개혁 필요하다. 방송 3사가 정권의 하수인이 되어버린 것이 이 사태가 집권 4년이 지나서야 터지게 된 결정적 원인이다. 그리고 언론이 제대로 서야 언론검증이든 뭐든 될 것 아닌가? 이미 국민들이 언론에 대한 신뢰를 저버린 지 오래되었지만, 이번에 부활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보았으니 기자들의 양심을 보호하고 보도의 자율성을 합리적으로 보장할 수 있게끔 해야한다.


7. 우리는 공정한 경제 질서를 원한다: 이 사태가 이렇게 국민적 공분을 사게 된 것은 이 나라가 어느새 젊은이들로부터 헬조선이라는 악명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금수저가, 금수저만이 성공하는 나라라는 것은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잘못된 사회상이다. 노력을 해도 성공하기 힘들고, 노력을 안 해도 배경만 좋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걸 정유라가 보여주었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더욱 분노한 것이다. 대기업은 사내유보금을 쌓아놓고, 골목상권까지 지배하며, 중소기업을 죄다 하청업체로 전락시키면서 정권에는 몇 백억씩 바쳤다. 헌법 제119조의 경제의 민주화는 괜히 있는 조항이 아니며, 열 말 필요 없이 국민들은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고, 시작점과 관계 없이 공정하게 돈을 벌 수 있는 세상을 원한다.


정치에 관심 없거나 회피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뽑을 사람이 없다. 누가해도 똑같다, 다 더럽다. 그렇다. 그럼 평생 우리는 멍청이 사기꾼 범죄자 지도자만 가지게 되는 걸까? 영웅은 언제 등장할까? 그건 어느 순간 짠하고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규정해주어야 한다. 좋은 지도자가 나온다면 그런 사람이 이미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명확히 규정해 준 그런 지도자가 되기를 자청하는 사람이 생겨서 나오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기존 체계를 반박하느라 끌려 다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걸 규정하는 일이다. 가장 중요한 가치를 규정해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하고, 그것을 통해 세상을 바꿔나가야 한다. 원하는 것을 찾자. 우리가, 우리 세대가 이걸 못하면 결국 우리는 무기력한 세대로 끝나버릴 것이다.


포스트 탄핵의 대한민국에, 내가 감히 단 한가지의 제안을 하겠다. 7가지 전부에 대한 제안을 굳이 무리해서 하기 보다는 이 한 가지 제안이 받아들여졌을 때, 나머지는 충분히 민주적 절차에 따라 해결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제안. 

대한민국 헌법 

제38조.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납세의 의무를 진다.


이 조항을 1항으로 두고, 2항을 반드시 추가하기를 요구하는 바이다.


제38조 2항

국가는 납세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하여, 국가의 모든 통치활동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과 목적, 방법, 결과에 대해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고 내용을 소명해야 할 의무를 가지며, 국가안전보장과 질서유지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시한을 두어 정보공개와 소명의 의무를 연기할 수 있다.


헌법에 국회와 사법부의 정보공개 의무는 있지만 행정부의 정보공개에 대해서는 단 한 단어도 없다는 것을 아는가. 나는 법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누군가가 더 법리적으로 적절하게 해당 조항을 수정할 수 있으리라 본다. 하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는 명확히 판단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이 나라에서, 우리가 이렇게 소외감을 받고, 사회 깊숙이 썩어 들어간 것은 빛이 비추지 않는 곳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권력이 있는 곳에 부패가 있는 것이 아니라, 어둡고 침침한 곳에 부패가 있다. 명명백백하고 합리적인 정보 공개와 소명절차를 통해 백주대낮과 같이 환한 빛을 비춘다면, 어떤 문제가 있든, 어떤 부패와 청산할 악습이 있든 국민의 지혜로 해결할 수 있다. 나는 이 단 한가지가 포스트 탄핵 시즌 우리가 가장 크게 주장해야 할 우리의 가치라고 생각하며, 이에는 좌파도 우파도 없고 젊은이도 노인도 없다고 생각한다. 오로지 민주시민이자 납세자라면 당연히 가져야 하는 권리이다.


2017년 새로 밝아올 대한민국이 헌법 제1조 1항이 규정하는 진정한 민주공화국이 되기를 바란다.


2016. 12. 12.



Posted by 호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