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나의 기준으로 보수적 사고를 가진 사람과 진보적 사고를 가진 사람을 구분하라고 한다면, 다음과 같은 기준을 제시하고 싶다: ‘능력이 좋은 사람이 잘 사는 게 당연한 것인가 아니면 능력과 관계 없이 평등한 수준의 삶을 보장받아야 하는가.’ 당연하게도 전자에 가까울수록 보수적 사고를 하는 것이고 후자에 가까울수록 진보적 사고를 하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진보적 이념에 동의하는 부분이 많다고 해도 전자와 같은 사고를 가진 사람은 결국 보수적이 될 것이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 할 수 있다. 이것은 공산주의가 망하는 이론적 이유로 가장 크게 거론되는 것이기도 하고,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사람이 자신의 사회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때도 언급하는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가난했던 사람이 노력과 능력으로 결국 크게 성공하는 이야기가 바로 자본주의 사회가 가장 미덕으로 삼는 그런 삶이다.


보수적 마인드와 진보적 마인드가 왜 갈리는지를 보기 위해 능력이 좋은 사람이 잘 살아야 한다는 보수의 명제를 기본 명제로 두고, 이 것에 대해 조금 생각해 보자. 이 문장을 조금 더 확실하게 쓰면 능력이 더 좋은 사람이 더 잘 살아야 한다가 된다. , 이 명제는 능력과 삶의 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큰 차이 없으니, 편하게 재산이라고 하자) 간의 상관관계에 대해 논하는 문장이다. 보수적 마인드에서는 여기에 양의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함수그래프를 떠올리지 말고, 산포도를 떠올리면 더 이해하기 좋다. 가로축이 능력이고, 세로축이 재산이라고 할 때, 점들이 마구 흩뿌려져 있는데 이게 어느 정도 양의 상관관계를 보여주고 있다고 보는 게 보수적 마인드인 것이다. 이 상관관계를 약하게 보면 볼수록 진보적 마인드에 가까워지고, 뚜렷한 것으로 보면 볼수록 더욱 보수적 마인드가 된다. 정말 가장 강한 보수를 떠올리면, 아예 양의 기울기를 가진 직선과 같은 확실한 함수관계가 있다고 보는 것인데, 이럴 경우 잘 사는 것과 능력 있는 것은 완전히 동치가 된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들이 펴는 논리는 거꾸로도 갈 수 있어서 잘 사는 사람이 곧 능력 있는 것이다와 같은 것이 되기 때문에 부자 옹호논리로까지 비약될 수 있다. 이런 논리를 보면 진보적 마인드의 사람은 속이 뒤집어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보수적 마인드의 사람들은 그 정도까지 확실한 함수관계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고, 어느 정도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에 그친다. 그러니까, 능력이 있을수록 잘 살게 되는 것이기는 한데, 운이나 환경에 따라 능력 없는 사람이 잘 살수도 있고 능력 있는 사람이 어쩌다가 못 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도 잘 살고 싶으면 능력을 계발하는 것이 좋다. 이 정도 논리이다.보수적 마인드의 사람 눈에 비치는 진보적 마인드의 사람들은 이 그래프에서 상관관계를 다 없애고 완전히 ㅡ자로 누운, 그러니까 능력과 완전히 무관한 재산을 실현시키자는 매우 급진적인 논리를 가진 사람들로 보이게 된다. ㅡ자 정도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적어도 그에 준하는 마치 은하수 측면도 같은 평평한 산포도를 구현하자는 논리로 보이기 때문에 이들에게 그런 말은 말 그대로 뒤집어지는 소리이다. 흥미로운 것은 양 극단이 모두 직선적 그래프를 이야기한다는 데 있다. 직선은 곧 산포도에서 보여주는 다양성을 없애버린 사회를 의미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극보수는 파시즘으로, 극진보는 극단적 사회주의로 다른 듯 비슷한 국가주의적 길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보수적 마인드의 사람들이 왜 이런 식으로 세상을 보는지 생각하면 답은 간단하다. 실제로 세상이 그렇기 때문이다. 굳이 수렵과 농사, 저장으로 이어지는 인류의 재산 축적 역사를 거론하지 않아도, 당연히 세상 이치가 어느 정도 능력 있는 사람이 재산도 잘 모으기 마련인 것이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해석했기 때문에 여기에는 보수라는 이름이 붙는다.


모든 논리가 그렇듯이, ‘현실이 그냥 그렇다는 것만으로는 설득력이 약하다. 현상이 있으면 설명이 있어야 하는데, 그 설명이 바로 첫 문단에서도 이야기한 공산주의 실패와도 연관된다. ‘보상이 주어져야 능력을 활용한다는 것이 그 설명이다. 반대로 보상이 없으면 그런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된다. 이 말도 결국 파서 들어가면 보상을 더 주어야 능력을 더 활용한다가 되는 것이며, 여기에는 사람은 더 큰 보상을 원한다는 이익추구적 인간에 대한 가정이 있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아직 정치적 이념이라고 보기는 힘든데, 현상과 설명만 있지 그것이 왜 바람직한가에 대한 답은 없기 때문이다. 이념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이익추구적 인간에 대한 가설은 차치하고서라도 왜 사람은 능력을 활용해야 하는가는 질문을 해야 한다. 여기에 그것의 바람직함’, , 정당성을 부여하면 보수적 마인드는 드디어 보수주의가 된다. 그것은 바로 사람들이 능력을 활용하여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사회의 존재 의의다라는 바로 성장의 개념이다. ‘성장을 위해 사회가 이런 모습인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수의 키워드는 성장이 되는 것이다.


물론, 주된 보수적 마인드들의 생각은 여전히 현상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설명과 이념 단계에서 나오는 개념들까지는 구체적으로 생각되어 있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현상에 대한 직관만으로도 보수적 마인드의 사람들은 많은 것에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능력이 좋은 사람이 잘 살아야 한다는 첫 문장을 다시 생각해 보자. 여기에서 무언가 잘 산다는 것에 집착하는 느낌이 드는가. 보수적 마인드의 사람들은 이렇게 세상을 볼 때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계층화시키게 된다. 위에서 말한 능력-재산그래프의 기울기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극단적 진보는 기울기 0을 주장한다. 그러면 그 반대는 어떻게 될까. 아마 큰 기울기를 주장할 것이다. 그런데 기울기가 크다는 건 계층차별이 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보수들이 극단적일수록 다 이런 것을 주장한다고 할 수 있을까. 따라서 보수적 마인드에서도 계층화 마인드에 집중하는 사람은 그래프의 기울기 쪽에 집중할 것이고, 전체 사회의 성장이라는 측면에 집중하는 사람은 산포도의 분포에 좀 더 집중할 것이다.


어쨌거나 진보 입장에서는 계층적 사고방식이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이다. 진보의 문장을 보자. ‘능력과 관계없이 평등한 삶의 수준을 보장받아야 한다’. 여기에서 보면 능력은 말 그대로 관계가 없기 때문에 결국 이 말은 평등한 삶의 수준을 보장하자는 것으로 오로지 계층 없는 평등에 대한 이야기만 있는 것이다. 분명히 보수 입장에서는 능력이야기를 했는데, 진보에서는 계층에 거품을 물고 넘어지는 이런 모양새가 된 것이다. 이것이 허구헌날 보수와 진보가 결론도 안 나는 싸움을 하는 이유 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것이다. 두 입장은 이렇게 키워드가 다르다.


보수적 마인드의 입장에서는 진보가 인센티브 시스템이 잘 구현된 멀쩡한 체계에서의 '능력과 재산의 양의 상관관계'를 갑자기 하루 아침에 ㅡ자로 만들려고 하는 위험한 사람들인 반면, 진보적 마인드의 입장에서는 보수가 괜히 세상을 재산과 능력으로 계층화 시키는 차별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된다. , 보수가 산포도를 그려놓고 세상은 원래 이런 거니까 열심히 잘 살아보자고 하는 거라면, 진보는 그런 그래프는 왜 그려서 사람들을 구별하냐는 것이 되겠다. 현상을 관찰하고 그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다 보니 이념까지 생긴 게 보수이기 때문에, 시작부터 사실상 이념으로 출발하게 되는 진보는 아무래도 보수의 안티테제 성격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진보는 그 반발 정도에 따라 여러 갈래로 갈리게 된다.


약한 것부터 가자면, 제일 첫 유형은 능력보상사이 과정의 공정성을 드는, , ‘능력측면의 관점이 마음에 안 드는 부류이다. 다시 말해, 계층화에 대한 반발은 아주 심하지 않으나 능력이 좋은 기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있는 부류이다. 능력이라는 것을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사실 거기에는 답이 없다. 시험이든, 다면평가든, 면접이든, 내부평가든 외부평가든 어떤 훌륭한 평가 방식을 도입해도, 어떤 사람의 능력을 객관화 시키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게다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좋은 능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결국 좋은 성과를 내는 사람이기 때문에, 평가의 어려움과 사회의 필요성에 의해 능력지향주의는 필연적으로 성과지향주의로 치환되게 된다. 이 때 성과가 능력과 온전히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치환에 따라 여러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언제 능력=성과의 등식이 깨지게 될까. 이러한 경우를 생각하라고 하면 무언가 불공정한 성과에 대한 이미지가 떠오를 것이다. 이런 갭이 생기게 되는 건 우리가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것에는 생각보다 여러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보통 우리가 능력이라고 인정하는 것의 이미지는 완전히 똑같은 환경에 놓여 있게 되었을 때에도 더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이다. 다시 말해, 바둑을 두거나 스포츠를 하는 것처럼 완전히 동등한 환경에서 다른 사람보다 더 두각을 나타내는 쪽을 능력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포츠만 떠올려도 알 수 있듯이, 참가 인원에게 완전히 똑같은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다. 인위적인 룰을 가지고 겨루는 스포츠도 그런 마당에 실제 세상의 일에서 환경을 똑같이 만드는 게 가능이나 하겠는가. 결국 실제 세상에서 보이는 성과는 당연히 우리가 바람직한 능력이라고 생각되는 것과 어느 정도 거리가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그 갭이 크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어쨌든 성과를 냈으면 그게 능력이다고 하여 갭이 없다는 것으로 생각하는 쪽에 가까우면 더 보수적인 것이 되고, 이 갭을 크게 보면 볼수록 진보적인 입장인 것이 된다.


그 다음 측면으로는 능력 쪽과 '잘 산다'는 것에 동시에 관련된 것이다. 이것은 기회의 형평성 문제가 등장하는 상속의 문제와 관계가 있다. 상속은 일단 말 그대로 재산의 상속을 일차적으로 의미하는데, 이 때문에 무능해도 상속만 받으면 잘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이 생겨서 처음 논의에서 능력 운운 했던 게 아무런 의미가 없어 질 수 있다. 하지만 이 문제를 피하는 방법이 있는데, 바로 잘 산다의 기준을 어디까지로 보는가가 되겠다. , ‘잘 산다는 것이 능력을 가진 개인만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가족으로 의미가 확장된다고 생각하면 보수적 마인드에 가까운 것이고, 능력자 개인으로 한정하면 진보적 마인드에 가까운 것이다. 보수적 입장에서는 능력 좋은 사람이 자식을 포함하여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잘 사는 것도 당연한 보상이기 때문에 논리에 문제가 없으며, 애초에 근본 논리에서 굳이 기회의 평등과 같은 것을 고려할 이유도 없기 때문에 가정 환경에 따른 출발선의 차이 같은 것도 논외가 된다. 보수적 마인드에서는 사회 시스템 상 능력과 재산 간의 전반적인 양의 상관관계가 있는가가 중요하지 이 것이 형평성 있게 흘러가는가, 개인적 차원에서 예외가 없는가는 그렇게까지 신경 쓸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반대로 진보적 마인드는 이것을 스포츠 경기와 같은 상황으로 보자면, 최대한 같은 환경에서 같은 장비로 승부를 보는 것이 정당하다고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 위에서는 스포츠 경기에서는 심판이 공정하고 룰이 잘 준수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 했다면, 여기에서는 선수들 간의 장비 차이가 없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이 비유를 확장하자면 극단적인 보수의 입장은 스포츠가 있으니 삶이 얼마나 재밌냐. 어떻든 하기만 하면 된다라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잘 산다'는 측면, 즉, 계층화 문제까지 나오면 진보적 마인드의 완성이다. 이 단계는 설령 능력의 차이가 실존한다 하더라도 그걸로 재산 차이가 나는 것이 옳은가를 논한다. 예를 들어, 선천적으로 능력에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는 경우인 장애인을 생각할 수 있다. 장애인은 영어 단어 handicapped에서도 볼 수 있듯이, 애초에 핸디캡을 지니고 있는데 이런 사람은 반드시 못 살아야 한다는 것인가 라는 것이 이 문제에 대한 진보의 접근 방식이다. 이 단계에서 진보적 마인드는 사회가 발전해도 소외되는 사람이 있다면 의미가 없다는 데에 집중하므로, ‘분배라는 키워드를 사용한다. 보수적 마인드 입장에서는 이것이 너무나도 인위적이기 때문에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며, 장애인 같은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애초에 못 사는 사람은 능력이 없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에 이런 주장이 능력 없는 사람들의 무전취식적 주장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스포츠 비유를 여기서도 가져가자면, 이 단계에서 등장하는 극단적 진보의 입장은 애초에 왜 서로 겨뤄야 하는 스포츠 같은 걸 시키냐같은 것이 되겠다.


정리하면, 보수의 전제에서 과정의 공정성, 기회의 형평성, 결과의 평등성을 기준으로 더 많은 측면에 반발할수록 더 진보적 마인드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세 측면이 모두 진보로 분류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과정의 공정성만 이야기하는 것은 여전히 보수측면일 가능성이 크다. 생각해 보면 결과의 평등성은 확실히 분배입장의 진보이고, 기회의 형평성도 어느 정도 분배입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과정의 공정성의 경우 분배라고 하기는 이상하지만 성장측면으로서는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보수 입장에서도 능력성과의 갭이 크지 않은 편이 논리에는 더 잘 부합하므로, 이렇게 생각하면 이른바 합리적 보수의 입장이 여기에 가깝지 않나 생각도 된다. 넓게 보면 기회의 형평성 까지도 일견 보수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스포츠 비유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애초에 스포츠를 하자고 하는 모든 쪽은 보수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가 실제로 스포츠 경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보수주의자고 진보주의자는 스포츠 경기를 싫어한다는 이야기가 아님은 밝혀둔다. 실은, 우리 삶을 스포츠로 보느냐 아니냐 자체가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남은 이야기로 보수가 계층화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고 했는데, 그럼 왜 대다수의 못 사는 보수적 마인드의 사람들이 자신에게 불리한 계층화를 인정하고 있는지가 의아할 수 있다. 이게 아마 대부분의 진보적 마인드의 사람들이 답답해 하는 가장 큰 측면일 것이다. 답은 간단하다. 아까 이야기 했듯이, 보수적 관점이라는 게 살다 보니까 보인 경험적 정답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많을수록 보수화 되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보수적 마인드의 관점은 틀리지 않았다. 그것이 거의 정답에 가까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 자신에게 유리하든 유리하지 않든 그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유리하다는 것은 실제 이득으로 확실하게 연결될 때나 할 수 있는 말인데, 진보의 비전은 그런 확신을 주기에 복잡하고 요원하다. 진보의 비전은 자연적이지 않고 작위적이며, 여러 측면이 혼재되어 있어 복잡하기까지 하다. 이것이 많은 사람이 보수적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이유이다. 물론 보수의 이러한 경험적 관찰이 어디까지가 사실인가는 조금 더 논할 거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이 정말 100% 맞는 것이라면 진보적 관점이 널리 퍼질 일도 없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비단 정치적인 이야기라서 그렇게 보였을지라도 이 글에서 이념적 옳음에 대한 논의는 하지 않고자 했다. 성장이 옳은가 분배가 옳은가는 쉽지 않은 문제이다. 인류가 지금까지 해 온 눈부신 업적은 대부분 성장에서 왔다. 분배도 충분한 성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또 반면에 소외되지 않는 사람이 있는 세상도 좋아 보인다. 이 글에서 하고자 했던 건 어느 쪽이 좋은지를 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방향이 그 사고의 원천과 잘 맞는지를 확인하기 위함이다. 우리나라에서 보수, 진보는 이러한 사고 원천의 차이뿐만 아니라 대북관점, 근대사관점 등이 더 영향을 주는 것도 같지만 결국 그 원천은 똑같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룬다.


2016. 2. 5.

Posted by 호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