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가짜뉴스와 온라인 여론몰이는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 그것이 SNS라는 좋은 촉매제를 만나 이제는 그런 것에 더 취약한 10대와 60대 이상에게 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예전에는 인터넷 여론은 그저 인터넷 여론이고 현실 여론은 많이 다르다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인터넷 여론이 세상 여론이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그저 인터넷이 노사모와 같은 특정 집단을 형성하는 매개가 되는 정도에 그쳤다.


현실 여론은 여전히 인터넷 여론과 거리가 꽤 멀다. 그런데 현실 정치는 이제 더 이상 인터넷 여론과 온라인 상황을 무시하지 못하게 되었다. 정치의 문법이 불과 1-2년 사이에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다. 박지원이 정치9단이라는 건 한때는 자타공인의 이야기였지만 이제 코웃음 칠 이야기밖에 되지 않는다. 기성 정치인이 시도하는 그 어떤 정치적 공작도 자기들 뜻대로 되먹지가 않는다. 청문회장에서 공격수 역할만 신나게 하면 되던 국회의원들이 문자폭탄을 받게 되고 신나게 공격 당하게 되었다. 그 이면에는 당연히 시민의식의 성장도 있지만, 그걸 지지해 주는 수단은 인터넷의 역할이 지대하다. 기존 대한민국의 정치공학이라는 것 자체가 완전히 흔들렸고, 거기에 적응못한 기존 정치인들의 삽질과 헛발질, 각종 추태는 비웃음 거리가 되었다. 자유한국당이 아예 막나가는 방향으로 노선을 잡게 된 것도 기성 정치공학이 완전히 무너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10대-20대의 온라인과 60대 이상의 온라인 세상은 극명하게 갈렸고, 또 남자와 여자가 갈렸다. 현실 여론은 몇 년전과 비교해도 별로 달라진 게 없는데 온라인 세상은 난리법석이다. 정말 최근에 극적으로 달라진 것은 10대와 60대 이상이 정치 이야기를 온라인을 통해 하고 있다는 것이다. 10대는 여물지 않아서, 60대 이상은 대다수가 배운 게 없어서, 이들의 여론은 상상초월로 극단적이고, 또 대부분은 글의 기본적 형태를 갖추고 있지 않을 정도로 수준 이하다. 그리고 그런 이들에게 가짜뉴스는 대단히 치명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실 여론은 그렇지 않다는 말은 이제 잘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그들이 온라인에서 받은 영향이 아직 현실 여론에까지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가장 정치적 영향력이 큰 경제활동 집단인 30-50대가 온라인 여론을 일일이 쫓아갈 시간이 없어 오히려 영향을 덜 받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온라인 여론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이게 정말 만약 현실여론까지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면, 그건 진짜로 나라가 반목과 갈등으로 뒤집어지는 것이다.


인터넷 여론에 대해 할 말이 많지만, 오늘은 가짜뉴스 이야기만 하자. 가짜뉴스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인 문제다. 이런 가짜뉴스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나는 많은 사람들이 이를 '진짜뉴스'로 극복하고자 하는 것을 보았다. 물론 정론이다. 기성언론이 팩트체크도 예전보다 열심히 하고, 또 진짜뉴스를 신속하게 알리는 게 자명한 대처법이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효과가 있을까. '진짜뉴스'라는 건 무엇이고 그런 게 있기나 할까.


팩트체크는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데 나는 팩트체크만으로는 그 극단적인 가짜뉴스 추종자들을 결코 궁극적으로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전 글들에서 계속 써왔지만, 첫째 팩트체크는 한계가 있다. 너무나 명확한 홀로코스트를 없다고 주장해도 반박하기가 마냥 쉽지는 않은 게 팩트라는 것의 본질이다. 팩트를 철저하게 검증하겠다는 건 제대로 된 법정싸움을 해보겠다는 것과 같고, 엄청난 시간과 치밀성이 필요한 일이다. 수많은 사안에 이렇게 대처할 수는 없다. 둘째, 가짜뉴스는 자극적이기 때문에 퍼지는 것이며 팩트체크는 그저 그걸 억제하는 방어적 수단에 그칠 수 밖에 없다. 그러니까 흥미로워서 퍼지는 가짜뉴스를 막기 위해 차갑게 대처하는 처방이 원천적 처방이 될 수는 없다. 게다가 가짜뉴스는 보통 없는 사실을 지어내는 것이니까, 가짜뉴스가 퍼지기 전에 미리 예방적 팩트 보도를 할 수도 없다.


사람들에게 '정치 논쟁에 답이 있을까' 하고 물어보면 대개는 '그건 답은 없지'라고 답하면서도 개별 정치 사안에 사실상 '답이 있다'고 대처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팩트를 갖다 대면 정치 논쟁이 끝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팩트를 갖다 대니까 상대는 또 그 팩트를 다시 의심하고, 상충되는 다른 팩트를 들고 오고. 다시 그 새로운 팩트를 체크해야하고, 그러다보니 본질은 흐려지고 팩트 논쟁만 하게 된다. 이게 기성 정치인들이 국민을 본질에서 멀어지게 하기 위해 그렇게나 많이 써먹던 수법이다.


팩트는 그 어떤 정치적 판단에도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팩트는 그저 팩트인 것이다. 정치적 가치가 결부되지 않으니까 우리가 '객관적 팩트'라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팩트는 정치 판단에 있어 필요조건이지 결코 충분조건이 아니다. 즉, 팩트가 충분히 확보된 상황에서 바람직한 논쟁이 시작되는 것이지 논쟁을 결정적 팩트로 마무리하는 게 결코 아니다.


물론 우리는 그 필요조건이 너무나 충족되지 않는 사회에서 살아와서, 팩트 체크는 여전히 중요하긴 하다. 박근혜 정부가 제일 나쁜 게 바로 팩트를 까놓지 않는 세상을 만들었다는 데에 있었다. 일단 팩트가 적당히 확보되어야 의미있는 정치 논쟁을 할 수 있을 텐데, 팩트 체크에 열올리다 상황을 지리멸렬하게 만들었고 결국 모두가 지친상황에서 결정은 자기들 마음대로 했다. 내가 문재인 정부에게 가장 큰 기대를 거는 것은 쓸데없는 팩트논쟁이 줄어든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팩트가 충분히 충족된 다음 세상에 대해 준비가 안 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가짜뉴스에 여전히 휘말린다. 내가 지금까지 본 모든 가짜뉴스는 단 한 마디로 그 성격을 정의할 수 있다.


'그것이 만에 하나 사실이라 하더라도 별로 시사점이 없는 것'


가짜뉴스가 사안의 핵심 팩트를 왜곡할 일은 별로 없다. 왜냐하면 그건 그야말로 핵심이기 때문에 팩트체크도 쉽게 되며,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확산이 가로막힐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본 가짜뉴스란 그 사안을 판단하는데 '별 상관도 없으면서 자극적이기만 한 것들' 뿐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거기에 휘말리거나 아니면 반대 입장에서 그걸 보고 분노한다.


가짜뉴스가 정치에 대해서 주로 건드는 '자극적인 사항'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정치인의 도덕성 관련 이슈, 정책에 대한 왜곡된 수치와 내용, 음모론. 보면 알겠지만, 가짜뉴스가 어려운 게 이런 사항들이 진짜인 것으로 밝혀지는 경우도 더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이 모든 사항은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별로 시사점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통 가짜인 줄 알았다가 사실로 밝혀지는 일은 반드시 '그게 사실이면 시사점이 큰 것들'이다.


이 쯤에서 정치인의 도덕성을 이야기하자. 정치인이, 지도자가 도덕적이어야 할까. 너무 당연하게 보이지만, 그게 별로 당연하지 않던 시절도 많았다. 전근대 정치에서는 개인적으로는 부도덕하더라도 좋은 업적을 낸 위인들도 많다. 그게 현대 기준에서 부도덕하다고 그 사람의 업적을 전부 까내려야 하는가. 그건 미개하고 잘못된 일이었는가.


내가 저번 글에 마키아벨리를 칭송하였는데, 그 핵심 중 하나는 마키아벨리가 받는 평가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는 정치와 도덕을 분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왜 우리는 정치에 도덕을 요구하는가. 우리가 정치에 요구하는 도덕은 무엇인가. 자유한국당이 부도덕 성추행범 도둑놈 집단이기 때문에 없어져야 하는 것인가를 생각해 보자. 나는 결코 그 포인트가 자유한국당이 없어져야 할 명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유한국당은 파쇼집단이기 때문에 없어져야 하는 것이지, 불법 범죄자 집단이라 없어져야 하는 게 아니다. 자유한국당 모든 의원이 만에 하나 완전히 깨끗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여전히 지금의 자유한국당이 민주주의에 해가 되는 파쇼 집단을 표방하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게 정확한 판단 기준이다.


나아가서, 나는 솔직히 정치인에게 도덕성을 요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나는 도덕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둔다. 무슨 이야기냐면, 도덕성을 지도자의 판단 기준으로 삼는 것은 철저하게 반대하고, 우리 사회가 도덕적인 사회를 지향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지지한다.


이게 모순되어 보일 수 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도덕성을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는 이야기는, 타인을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체가 없는 이른바 '일반 도덕'의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해야 한다. 그 일반 도덕이 무엇이냐 하는 것부터 엄청난 논란 거리일 뿐만 아니라, 그 범위가 엄청나서 누구든지 어떻게든 걸리게 되어 있다. 게다가 법 테두리를 벗어나기 시작하면 별 놈의 것이 다 시비거리가 된다.


성경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져라'고 한 것은, 당연하게도 우리에게 죄 없는 사람이 되라는 게 아니고 죄 없는 사람이 없으니 그런 걸로 다른 사람을 재단하지 말라는 뜻이다. 재단하지 말라는 말도 성경에 있다. 그러니까 누가 더 더럽네 마네 할 일도 아니고, 한 두 개 사안으로 사람을 쓰레기를 만들거나 자비롭게 봐주거나 할 일도 아니다. 김무성이 노룩패스한 게 진짜 꼴보기 싫기는 하지만, 단지 그 것 하나로 김무성을 갑질쓰레기로 치부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다. 박정희가 잘못한 걸 설명할 때 여자와 재단비리 이야기가 핵심인가? 전두환이 잘못한 걸 설명할 때 29만원이 핵심인가? 그게 아니어도 할 말이 너무나도 많고 그 쪽이 더 핵심이다. 박정희, 전두환이 만에 하나 정말 깨끗한 사람이면 그들의 모든 과가 용서가 되는 일인가 말이다. 반대로 노무현 대통령이 행여 정말 가족 비리가 있었다 하더라도 노무현 대통령의 공이 다 없어지고, 다른 과를 모두 제치고 그게 최대의 과가 되느냐 이 말이다. 도덕성 논쟁은 그저 자극적인 사항일 뿐이지 결코 핵심이 될 수 없고 그래서는 안된다.


누구든지 도덕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그 의미는 죄를 짓지 말고, 일반 도덕을 100% 준수하고 살라는 의미가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도덕성은 이 사람이 자신의 행동을 다른 누군가가 똑같이 했을 때 받아들일 수 있는 행동을 하는가 아닌가로 규정된다. 경대수가 욕을 먹어야 한다면, 똑같은 위법 의혹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비슷한 처지의 사람을 '도덕'의 기준으로 판단하려고 했다는 데에 있다. 자유한국당 하는 짓이 꼴보기 싫은 것은 더 큰 도둑놈들이라서가 아니라, 자기들도 하는 일을 빌미로 공격하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이전의 많은 민주당 의원들도 꼴보기 싫은 짓을 많이 했다.


나의 도덕성 정의에 이런 의문을 가질 지 모르겠다. "그럼 나는 남들이 뇌물 받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니까, 나도 뇌물받아도 된다고 생각하면 도덕적인 것인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그건 '나'와 '남'이 모두 뇌물을 받아먹는 위치에 있는 동질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실상 '나의 입장'만 생각한 것이 된다. 여기서 '남'을 생각하려면 '뇌물을 받을 수가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야 맞다. 그 사람들 입장에서 뇌물은 공정경쟁을 저해하고 부당이득을 취하는 정말 나쁜 일이 된다.


위장전입도 그렇게 생각했을 때 여전히 나의 '도덕성 정의'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병역문제도 마찬가지고, 문준용 논란도 마찬가지다. 내가 생각하는 도덕성의 정의가 바뀌었다고 해도 '일반 도덕'상 부도덕했던 것이 도덕적인 것으로 되는 건 거의 없다.


다만, 우리가 지도자에게 도덕성을 요구하는 이유는 조금 더 명확해진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헤아릴 줄 아는 것. 자신이 가지게 되는 권력과 유리한 위치에서도 여전히 다른 사람 입장에서의 정당성을 생각할 줄 아는 것. 그래서 권력을 이용하여 부당한 일을 하지 않는 것. 이게 내가 생각하는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도덕성의 본질이다. 그러니 이낙연이나 강경화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서 그런 부도덕한 일을 해왔는지, 그리고 그런 일들에 대해 스스로 부끄럽게 생각하는지. 이게 중요하다.


물론 이런 도덕성의 기준도 여전히 애매하고, 답은 없다. 그리고 여전히 새로운 도덕성 기준을 적용한다 하더라도 나는 그것이 절대적인 판단 기준이 된다고 보지 않는다. 지도자와 지도층의 행동에 우리가 제기해야 하는 문제는 어디까지나 사안별보다는 시스템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시스템이 방조하거나 권장하는 범죄가 정말 나쁜 것이다. 병역 비리도 그게 사실상 시스템화 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런 여지가 있다면 그럴 수 없게 시스템을 만들면 된다. 그런 것에 노력을 기울이는가 기울이지 않는가가 개인의 도덕성보다 더 중요한 판단 준거다.


문재인이 잘하고 있는 건 부도덕을 차단하는 열린 시스템을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하는 것을 모두 까놓아 확인할 수 있게 하고, 또 부당하게 공금 활용하던 것을 사비로 돌려 놓는 것. 부도덕을 방조하는 시스템을 하나씩 개선해 나가는 것. 이걸 잘하는 것이지, 문재인 본인이 백색의 성인 군자인게 포인트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박근혜가 뇌물을 받은 게 포인트가 아니고, 우리나라 시스템을 망쳐놓았다는 게 포인트다.


정치를 판단할 때 도덕을 한 발짝 벗어나 보면 가짜뉴스도 시시하고, 정말 중요한 것이 보이게 된다. 도덕성 논쟁, 팩트 논쟁은 절대 답이 나오지 않고, 오늘 내가 공격하면 내일 내가 공격받을 수 있는 그런 지난한 것이다. 새정치는 별다른 게 아니다. 이미 16세기에 제시되어 있었다. 도덕, 이념을 떠나 시스템적 측면으로 정치에 접근하는 것. 그게 새정치고, 그걸 염두에 두면 이렇게 극단적인 논리로 온라인에서 싸울 일도 없다.


마키아벨리즘이 도덕과 정치를 분리했기 때문에 '부도덕'한 것으로 오해받은 것처럼, 도덕성을 분리하자는 말이 '부도덕을 방치'하자는 것으로 들릴 수 있다. 결코 그렇지 않다. 궁극적으로 '열린 시스템'화 된 부도덕은 절대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열린 시스템을 지향하기만 하면 이전에 부도덕한 것인지도 몰랐던 것도 도덕적인 방향으로 개선된다. 기존 대통령이 공금으로 밥을 먹은 게 부도덕한 것이라고 누가 얼마나 생각했겠는가. 문대통령이 그걸 시스템화 하면서 우리는 그 일의 도덕성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지금 눈에 보이는 도덕성을 좇자고 사안에 매몰되면 나쁜정치인들은 신나게 사안을 왜곡하여 싸움을 부추기고 더 큰 시스템은 놓친다. 치밀한 시스템 설계가 먼저고, 그 시스템의 내용을 누구나 볼 수 있게 활짝 열어 놓으면 자연히 팩트논란은 완화되고 도덕성은 확보된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현대의 마키아벨리즘 응용이다. 그리고 그게 새정치다.


2017. 5. 26.


Posted by 호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