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의 배신

Essay 2017.05.30 17:32

때론 유식함이 무식함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군색한 변명’이라는 표현을 썼을 때 어떤 사람이 보고 “어? 군색이 아니라 궁색인데?” 라고 생각하여 내가 오타를 냈다든지, 아니면 나를 맞춤법을 모르는 무식한 사람으로 취급할 수 있다. 하지만 군색도 있고 궁색도 있는 표현이다. 그래서 내가 더 많은 표현을 알지만, 오히려 맞춤법을 모르는 사람 취급을 받게 되어 버리는 억울한 경우가 생기게 된다. 적확하다, 제언하다 같은 표현들도 마찬가지다. 띄어쓰기, 그리고 영어 등 외국어로 가면 더 많은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이유는 유식과 무식이 단순히 ‘더 많이 안다’는 기준에서 구별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유식과 무식은 ‘잘못 안다’는 개념도 포함한다. 잘못 알면 무식하고 제대로 알면 유식하다. 군색과 궁색 문제에서, 군색을 알았던 쪽은 보통 잘 모르는 사실을 더 알았기 때문에 분명히 더 유식한 게 맞는데 군색을 몰랐던 쪽은 이것을 ‘잘못 알았다’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나아가 ‘제대로 안다, 잘못 안다’는 개념까지 오면 ‘제대로 아는 것이 무엇인가’는 모호해진다. 더 많은 지식을 아느냐는 그냥 모르는 것을 아는 데에 그치면 되지만, ‘제대로 안다’로 오면 이른바 Fact 논쟁이 시작되며 정말 Fact가 무엇인지는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다. 예로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을 누가했는가는 좋은 상식 문제다. 스피노자라는 것이 우리 사회의 모범답안이고, 스피노자의 존재를 아는 것도 꽤 유식한 일이 된다. 그런데 이 말을 스피노자가 했다는 증거는 아무 것도 없고 오히려 서양에서는 마르틴 루터의 발언으로 주로 알고 있다는 사실은 아는가. 그러니까 이 발언을 ‘루터’가 했다고 대답하면 자칫 우리 사회에서는 무식해서 ‘아무나 찍은’ 사람이 되어버릴 수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럼 이 말을 진짜 루터가 했는가. 이 사실도 검증이 어렵다. 왜 스피노자로 알려졌는가. 일본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보통 노력으로는 제대로 된 추적이 어렵다. 상당히 깊은 연구과 조사 단계가 들어가야 확인할 수 있는 것이고, 지금까지도 내용이 쉽게 나오지 않는 걸 보니 결론은 ‘누가 했는지 모르겠다’에 가까운 듯 하다. 이렇듯 간단해 보이는 상식문제도 fact check가 대단히 어려워 질 수 있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또래보다 상식이 풍부하다는 말을 들었고, 지금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도 어렸을 때 무식한 아이들을 많이 무시했다. 많이 놀렸고, 더 유식해지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어렸을 때야 많은 지식을 취득하기만 하면 되니 쉬웠다. 그런데 살아보니 대충 취득했던 지식이 잘못된 경우가 생각보다 너무 많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제대로 안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고, 이제 지식으로 상대를 무시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내가 당장 뭘 더 알거나 뭘 더 제대로 안 것 같지만 이에 배신당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나는 그 사람에게 대단히 잘못했을 뿐만 아니라 내 스스로도 대단히 부끄럽게 되는 참사가 발생한다. 부끄럽게 느끼면 다행인데, 우기기라도 하는 날에는 유식한 척하면서 사실을 호도하는 나쁜 사람이 되기 딱 좋다.


상식이라는 말은 통상의 지식, common sense다. 이 말 어디에도 이 지식이 옳은 것인지 제대로 된 것인지에 대한 내용은 없다. 영어 표현에는 심지어 knowledge보다 애매한 sense라는 말을 쓰고 있다. 상식은 그냥 꽤 절대다수가 그렇게 알고 있으면 상식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과나무 발언은 스피노자의 발언이다’는 우리 사회에서는 상식이 분명히 맞다. 다만 인류 사회 단위에서는 상식이 아닌 게 또 맞다. 상식은 이처럼 지식의 본질적 측면과는 관계없는 부분이 많다. 그래서 상식이 풍부하다는 말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반면에 상식이 통하는 사회라는 말은 괜찮아 보인다. 사회의 대다수 구성원이 합의하고 있는 ‘sense’에 부합하는 사회라는 건 일단은 상식이 무너진 사회보다는 나은 게 당연하다. 상식을 일부러 무너뜨려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지 않다면 말이다.


물론 유식함은 미덕이고 꼭 필요한 소양이다. 많은 것을 알아야 뭐가 진짜인지도 잘 안다. 많은 것을 알아야 더 중요한 사실과 덜 중요한 사실도 가려낼 수 있다. 많은 것을 알아야 앞으로 더 많은 것을 알 수가 있다. 하지만 그저 많은 사실을 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항상 나오는 이야기이지만, 우리는 이미 정보의 홍수에 살고 있는데 생각이 더 풍요로워지지는 못했다. 이 수많은 정보들의 대부분은 우리에게 더 많은 즐길 거리를 주는 데에 그치거나 그다지 깊은 의미를 주지 않는 가벼운 정보를 주는 데에 그쳤고, 때로는 가짜 뉴스와 같이 잘못된 정보를 지나치게 많이 주기도 하였다. 우리는 ‘아는 정보가 많다’는 점에서 예전보다 많이 유식해졌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정보가 ‘얼마나 제대로인지’ 정보를 선별하고, 정보를 음미하는 능력은 많이 퇴색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미덕이 되는 유식함은 지식과 정보를 알았다는 데에서 결코 그치지 않는다. 정보와 지식이 우리에게 왜 필요한가를 생각해 보자. 좋은 정보를 가려 얻고, 소화하여 적절히 활용하고자 하는 데에 있다. 정보 선택, 정보 소화, 그리고 정보 조합. 이 것들을 더 많이 하기 위해 우리는 유식해지고자 한다. 그러니, 그저 더 많이 알았다고 뽐낼 필요가 없다. 적절한 정보 선별이 많은 정보의 취득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며, 정보 소화가 정보 선별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정보를 조합하여 새로운 활용을 만드는 일이 정보 소화보다 더 중요하다. 이 마지막 단계는 창의성을 의미하며, 이것 때문에 우리는 정보를 취득한다. 이 순환을 빨리 돌릴 수 있는 사람이 더 많은 창의적 활동을 할 수 있다. 이렇듯 상식이 풍부하고 아는 것이 많아도 그것만으로는 결코 세상에 도움이 될 수 없다. 적은 정보라도 제대로 선별하고, 소화하여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 세상을 한 발짝 나아가게 한다.


그러므로 이 글에 혹시 띄어쓰기가 잘못된 점이 있거나 맞춤법이 틀렸거나 비문이 있거나 틀린 사실이 있더라도 아량으로 넘어가주고 내용을 함께 생각해 주길 바란다.


2017. 4. 7.


Posted by 호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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